인민군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노무현이 5살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무고하게 살해했다고 전해온다.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했다.
철천지원수로 여겨졌을 것이다. 철거하려 할 때 못 본 체 했다.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괄시와무시를 당하게됐다. 갖고 있다가 6.25가 터지고 나서 괴뢰군이 전남 강진을 점령하자 괴뢰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철저한 앙갚음을 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됐다고 한다.
남원 부근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지 않았겠나 하는 의혹이 있다 한다.
될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노무현](5살)과 [노건평]을 데리고 목포항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고 야반 도주를 했다 한다.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가족을 데리고 부산항에 도착한 [노판석]은 산골 오지인 경남 진영으로 도망을 간다. 그곳서 호적을 새로 만들었다 한다.
그리곤 또 다시 김해로 도주를 했고 이후부터 [노무현] 집안은 경상도출신 행세를 해온 것이라 한다. 하던 [권오석]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권오석]은 6.25때 인민군 앞잡이로서 지역주민 11명을 살해한 경력이 있다. 못되게 하고 난 후 변호사 개업을 한다. 이때 [노무현]을 도와준 이가 [김광일] 변호사다. [노무현]에게 돈까지 빌려주면서 [노무현]의 변호사 개업을 도와준다,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시국사범들에 대한 인권 변론하는데, [노무현]과 [문재인]을 참여 시키기도 했다.
[김광일] 변호사 덕에 [김영삼] 민주당 총재를 알게 된다,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 된다. 책에서 [노무현]은 '[YS]로부터 봉투를 많이 받아서 원도 없이 써봤다' 라고 썼다.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 던졌고 이 덕분에 호남지역사람들과 [DJ] 눈에 들게 됐다.
이를 명분으로서합당을 극렬 반대 했고, 꼬마민주당에 잠시 머물다 [DJ] 진영에 합류했다.
관계까지 발전을 하게 된다.
[변재환]박사 (58세)가 있다. [권오석]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공업용 알콜에 섞어 마시다가 실명 된 것이다. 실명한 [權]은 6.25가 일어나기 전인 1948년에 남로당에 가입했다.
[권오석]은 면서기였다. 쫓겨 와,[변백섭] 면장 밑에서 일을 하게 됐다.
치안대장이되었다. 죽일지 살릴지를 등급별로 판정했다."
장인의 묘소에참배를 하면서 “장님(장인 권씨)이 부역을 하면 얼마나 했겠느냐”,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것이 무슨의미가 있겠느냐” 고 말했다.국민을 속인 것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때 나는 어려서 부모님 일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실명한 권씨의 경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권씨의 경우 장님이 된지 얼마 안 되었고 남편이 양민을 등급별로 손으로 판정하고 있을 때, 옆에서 부축했던 사람이 바로 [노무현]의 장모였다.
“장모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 되나. 나는 [권양숙]씨와 동갑이다. 낱낱이 듣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어렸다는 이유로 모른다는 것인가?
15살이었는데 아버지가 왜 감옥에 갔는지 들었을 것 아니냐? 우리가 알고 있는 3.1운동이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아서 안 것은 아니지 않나.”
부모 두 사람이 있어도 어려운 살림인데 아버지 없이 산 유족들은 그야말로 피눈물 흘리는 세월이었다.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을지 모른다.
양민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제대로 알리고 사과해야 한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좌익사건실록’에 있다.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면서기로 일했을 정도로 똑똑해서 양민을 학살하기로 결정한 인민재판에서 검사, 변호사, 판사 역할 등 1인 3역을 한 유일한 재판관이었고,그의 말 한 마디로 양민의 생사를 가름하였다고 한다.
'실록' 책자에는 [권오석]이 죽인 피해자가 9명으로 돼 있다.
卞百燮(43, 농업) 창원군 진전면 양촌리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선전부장으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또 치안대가 되었겠는가?
불구하고 유독 시각장애인을 간부로 기용한 사실은 [권오석]의 좌익사상이 투철하였고 좌익활동에 적극적이었음을 방증하고 있다고 한다
1956년 폐결핵등의 질병 때문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고, 5.16 이 나기 두 달 전인 1961년 3월27일 재수감됐다는 요지로 답변했다.
믿을 수 있는 동지들과 의형제, 그리고 막내동생과 그리운 여인. 이들 4명을 가장 만나고 싶어했다고 한다.
故 [우스노미야] 參의원과 [김일성] 사이에 1974년 9월 평양 대동강 별장에서 2박3일 회담을 하고 남긴 '[김일성-우스노미야] 단독회담 보고서'라는 비밀 보고서가 일본 공안 조사청 지하실과 평양 [김일성] 궁전 비밀금고에 남아 있다.
"[우스노미야] 선생과 나는 형제간 이고 내가 2살 더 많으니 형이 되는 셈이지요. 또 아우님과 남조선의 [김대중]이 형제지간 이라고 하니 우리는 3형제가 되는 셈입니다.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남조선 대통령이 되면 우리 3형제가
손을 잡고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항, 큰소리 치는 아시아의 龍이 될 것 입니다" 라고 말했다.
[韓完相] 대한적십자 총재이며,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여인은 前 YWCA 총재를 지낸 [孫寅實] 여사 였.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상당부분 묘사돼 있는데 한때는 남조선으로 밀사를 보내 북한으로 탈출시키려고 까지 했었다.
평양으로 탈출까지 시키려 했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북한 로동당·빨치산 혁명투쟁 교육시간에 등장하는 '남조선 남로당 [권오석] 동지의 투쟁사'의 그 [권오석]이다.
장님임에도 6.25 민족 통일전쟁(?) 에 앞장서 남조선 반역자들을 가려내 처단하는데 혁혁한 攻을 세웠으며, 馬山지구 전투에서 미군 몇 명을 포로로 잡아 오는데도 큰 功을 세웠다.
않은 채 북조선 조국을 배신하지 않겠다며 감옥 안에서 최후를 맞은 영원히 수령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남조선 빨치산 투쟁 영웅' 이었다.
사위가 남조선 대통령이 되고 그 딸이 청와대 안주인이 되어 입성 하는 날,
평양방송은 며칠 동안 딸이 남조선 대통령이 된 사실을 방송하며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정신이 승리했다'고 열 올리며 광분했다.
사랑하는 남조선 영웅 [권오석] 동지의 딸 청와대 입성" 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까지 크게 만들어 걸어 놓았는데
한국 국회에서 말썽이 일자 이를 철거했다는 소문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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