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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활동 중인 하급공작원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느라 북(北)으로 갔던 시대는 지나갔다
북한의 대남공작은 김정일→로동당 대남담당→黨(당) 대남 연락부 비서→통일전선부 작전부→중앙당 35호실이 분담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한국민주전선중앙위원회→남조선문제연구소 등이 있다.
북한의 대표적 대남공작 조직인 통일전선부에는 한국사정조사 연구에 수십 년 종사해온 골동품 같은 전문가들이 3,600명 이상 있어 남한사정을 꿰뚫어보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남파공작원들이 북한 공작부와 교신한 무선전화는 하루 10만 건 내외였으나 김대중 시대 들어서는 한 때 하루 50만 건을 넘다가 노무현 시대에 와서는 1만 건 이하로 감소했다.
무선전화를 통한 공작원들의 대북접촉이 이처럼 줄어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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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한 e-메일의 활용과 함께 남한 현지 지휘본부가 서울에 설치되고, 북한 정권에서 서열이 20번 내외쯤 가는 거물책임자가 서울에 상주하게 된 것이다.
1975년 南베트남 패망당시 北베트남 대남공작부가 현지 지휘부를 수도 사이공에 두었던 점, 90년대 초 독일통일 직전까지 서독정부 산하에 1만 명의 동독공작원들이 있었던 것보다 남한의 사정은 越南이나 독일보다 훨씬 심각하다.
행정·입법·사법·언론·문화 등 각 분야는 물론 심지어 軍部와 정보기관에도 공작원들이 침투해 있다. 이들이 안주하고 있는 곳은 각 기관, 시민단체 등 광범위하며 혁명과업 수행에 바쁘다.
공작원들이 안주하고 아지트로 삼고 있는 소위 시민단체는 대체로 XX통일, XXXX청년, XXXX연구소 운운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공작요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현직 정보요원들과 밀접하게 협조해온 미국 CIA외에는 잘 모르고 있다.
글쓴이:강력통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