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치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워커장군

굼뱅이2 2013. 12. 8. 14:52

워커 將軍의 最後

                                                                                                                                                           
韓國을 위기에서 구해준 워커 將軍 !

그는 1950,12,23日, 서울 北쪽 의정부의 美軍部隊를 방문하는 길에

아들, <샘 워커> 중위에게 은성훈장을 직접 수여하기 위하여

얼어붙은 도로를 맹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워커 中將의 뒤에서 따라오던 韓國軍 트럭이 추월하려다가 추돌하게 되어

그만 將軍의 지프가 딩굴면서 보좌관과 운전병은 튕겨나와 살았지만

워커 將軍은 즉사하고 만다.

 
이승만 大統領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사고를 낸 韓國軍 운전병을

즉각 처형하도록 지시한다.

옆에 있던 美 군사고문관

짐.하우스맨 대위의 만류로

운전병은 3年 징역형을 받게된다.

이 짐.하우스맨은

회고록에서 뼈아픈 지적을 했다.

<하버드의 고풍어린 교내 예배당 벽에는 韓國戰에 목숨을 바친

 20 餘名의 하버드생 병사들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저 있다.>

<美國은 한 도시에서 한사람이 나올가 말가 한 "美國의 希望"들을

韓國에서 自由를 지키기 위해서 내보냈다.>

<韓國에서도 많은 학도병들이 전사 했지만

韓國의 어느 학교에서도 전사 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가는 자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표지는 없다.>

<그리고 생명을 던져 진지를 지켜낸 병사들의 얘기는 입으로만 전해질 뿐

그들을 기릴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은 전후 팔을 잃은 國會議員, 눈이 날아간 國防長官을 갖지 못했다.>

행사장이나 연회장 같은 데서 한국전의 전상자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美國은 우리의 血盟이란 말은

오래 전에 들어본 얘기이며,

우리를 구해준 워커 將軍이 어떤 사람인지

더더욱 알지 못하고,

맥아더 원수의 동상을 무너뜨릴려는 자들이

덕실거리고,

6,25는 김일성의 통일전쟁이라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將軍이 순직한 후 한국정부는

美軍의 휴양을 위하여 호텔을 건립하고,

그를 기리기 위하여 호텔명을 워커힐 호텔이라 이름 하였으나!

그의 공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가?

*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순직 55주기를 맞아 韓.美同盟親善會에서 5억여원의 기금을 마련하여

승전지(勝戰地) 大邱에 그의 동상이 세워진다니 참으로 多幸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한국전 참전군 전쟁기념관 참전기념 비석건립 서명란을 보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이 글을 올렸습니다.</! FONT>

 

 

 




▲ Manhattan Beach